처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어색함
친구가 요즘 결혼 생각이 있냐며 은근히 부추기길래,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강남에 있는 결혼정보회사 상담을 예약했다. 사실 대단한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주변에서 하도 주변 지인들이 여기서 누구를 만났네, 어떤 조건을 따지네 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대체 거기는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했을 뿐이다. 압구정 근처의 번듯한 건물 7층에 올라가서 벨을 눌렀는데, 생각보다 문이 너무 묵직해서 들어가기 전부터 조금 망설여졌다. 내부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깔려 있고, 다들 낮은 목소리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웰컴 드링크라며 시원한 오미자차를 건네주는데, 그 친절함이 오히려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접수대에 앉아 간단한 인적 사항을 적는데, 학력부터 부모님 직업, 심지어 자산 규모까지 꼼꼼히 적어야 하는 칸을 보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쏟아지는 질문과 내 조건에 대한 점수화
상담 실장님은 4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인상이 굉장히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날카로웠다. 내가 적은 종이를 훑어보더니 바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연봉은 어느 정도인지, 자차는 있는지, 부모님은 노후 대비가 되어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결혼 상담’이라기보다는 무슨 대출 심사나 면접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내가 연봉이 아주 높지 않다고 대답할 때마다 실장님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는 걸 보았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상류층 결혼정보회사’라는 타이틀을 언급하며, 자기네 회원들은 대다수가 전문직이거나 기업가 자제들이라고 강조했다. 마치 내가 그 문턱에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인지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굳이 그렇게까지 남의 조건을 따져가며 사람을 만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생각보다 비싼 가입비와 현실적인 벽
상담 끝자락에 슬쩍 물어본 가입비는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대략적으로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사이를 오가는 금액이었는데, 몇 번의 만남을 보장해 주는 조건치고는 꽤나 큰돈이었다. ‘이 돈을 내고서라도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시질 않았다. 실장님은 요즘은 다들 효율적으로 움직인다고, 30대 초중반에 여기 오는 게 가장 현명한 투자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왠지 내가 상품이 된 기분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1년이라는 기간 내에 횟수를 다 채우지 못하면 이월이 되는지, 아니면 그냥 날아가는 건지 따져 묻는 과정에서 왠지 모를 피로감이 밀려왔다. 그냥 소개팅 어플이나 지인 소개가 더 나은 건지, 아니면 여기가 정말 최후의 보루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뚜쟁이 아줌마와 세련된 상담사의 중간 어디쯤
예전에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 말하던 ‘뚜쟁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그때는 동네 골목에서 사람을 잇는 정겨운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이곳은 모든 것을 데이터화하고 효율로 치환하는 차가운 시스템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커플이 상담실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서로가 서로의 조건을 이미 다 알고 만나는 상황은 어떤 기분일까. 정말 연애라는 설렘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의문만 가득했다. 상담 과정에서 말해준 조건들이 너무 구체적이다 보니, 오히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하나의 ‘조건 조합’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탔다. 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지나쳤을 사람들을 보는데, 갑자기 ‘저 사람은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면 어떤 등급일까’ 하는 아주 엉뚱하고 쓸데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서 괜히 예전에 썼던 가계부를 다시 들춰보았다. 결혼 자금으로 따로 모아둔 돈이 없지는 않지만, 그걸 여기 가입하는 데 쓴다면 그건 정말 가치 있는 지출일지 아니면 그저 막연한 불안감을 달래기 위한 비용일지 아직도 답을 못 내리겠다. 내일은 그냥 평소처럼 친구들과 만나서 밥이나 먹어야겠다. 거기서는 적어도 누가 얼마를 버는지,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따위는 묻지 않으니까. 아마 당분간은 그냥 이렇게 지내게 될 것 같다. 뭔가 큰 결심을 하고 간 자리였는데,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 든다.

상담받는 동안 조건에 맞춰서 만나는 게 정말 어색한 느낌이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요즘 연애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